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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청년은 '취업난'… 택시회사는 '인력난'

청년은 '취업난'… 택시회사는 '인력난'
                                 하루 12시간 일해도 月수입 150만원… 택시운전 기피
                                           회사 주차장에 노는 택시 '가득'… 스카우트戰  치열

 

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서울시 교통연수원. 택시면허 시험장이 있는 1층 강당 앞 로비에 서울에 있는 각 택시회사 인사담당 직원들 100여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로비 양쪽에 의자를 두고 줄지어 앉아 '은평구' '광진구' 등 회사 위치와 '전 차량 오토' '전 차량 GPS 완비' 등 차량 조건을 적은 종이를 의자 앞에 걸어놓았다. '기숙사 제공' '주5일제 보장'이라고 적어놓은 회사도 있었다.

오전 10시 50분쯤 시험이 끝나고 수험생 270명이 몰려나오자 마치 호객 행위를 하듯, 인사 담당자들이 수험생에게 달라 붙었다.

"혹시 도봉·노원이나 의정부 살면 이리 좀 와 보세요."

"차에 내비(내비게이션)도 다 깔려 있으니 일단 우리 회사에서 시작해요."
영광운수㈜ 한상현 노무과장은 2시간 동안 수험생을 붙잡고 회사의 근무조건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는 뜨뜻미지근한 대답뿐이었다. 오후 12시10분 합격자 발표가 나고 수험생들이 빠져나가자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 한 과장은 "2주 넘게 새 운전기사를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며 "요즘 택시업계에서는 구직자가 상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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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서울 강북의 한 택시회사 주차장에는 운행을 나가지 않는 택시들이 줄지어서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실업난 사회여도 택시 회사는 구인난

경제난 속에 갈수록 취업난이 심해지고 있지만 택시업계는 정반대로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서울의 경우 택시운전 면허시험 응시자들은 300명 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정작 합격해놓고 취업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일단 면허를 따놓고 보자'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날 시험에 응시한 박홍근(55)씨는 "두 달 전 코레일 유통(옛 홍익회)에서 퇴직했다"며 "다른 일을 더 알아보고 정 급하면 택시를 할 생각으로 면허를 땄다"고 말했다.

합격자 중 1명을 채용한 S교통의 관리부장 이모(47)씨는 "기사가 모자라서 그냥 세워놓고 놀리는 택시가 많다"고 말했다. S교통이 보유한 택시는 총 100대. 택시를 계속 가동하려면 1대당 2.4명씩 총 240명의 운전기사가 필요하지만 160명밖에 안 돼 평균 가동률이 70%도 안된다.

실제로 택시회사 차고지마다 운행하지 않고 주차돼 있는 택시들이 적지 않다. 7일 오후 4시쯤 서울 도봉구 방학동 한영택시㈜ 주차장에는 택시 30여 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 회사 김상태 관리부장은 "정상적으로 가동하기엔 운전기사가 30~40명 부족하다"고 말했다.

버는 돈은 반 토막, 사납금은 그대로

택시운전 면허자들이 택시회사 취업을 외면하는 것은 최근 택시 영업 환경이 하루 12시간 일해도 월 150만원 벌이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 부근 택시정거장에 차를 세워놓고 있던 박모(36)씨는 "택시운전을 한 지 17일 됐다"며 "그중 3일은 사납금(社納金)을 맞추지 못해 내 돈으로 채워 넣었다"고 말했다.

사납금은 택시 회사들이 차를 들고 나간 기사들에게 매일 받는 금액이다.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보통 주간은 9만~10만원, 야간은 10만~11만원 정도다. 기사들은 일정한 월급에다가 사납금을 내고 남는 초과 수입을 개인 성과급으로 챙겨간다.

그런데 최근 불황이 깊어지면서 택시 대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사납금 채우기에도 급급한 기사들이 많은 것이다.

택시업계의 만성적인 구인난에는 불황 탓도 있지만 수요에 비해 택시가 너무 많은 구조적인 요인도 있다. 서울의 경우 1997년 6만8975대였던 택시는 2006년 7만2278대로 늘었다. 반면 택시 이용객 수는 같은 기간 12억3951만4923명에서 9억5059만8757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서울시 택시운송사업자조합 이희춘 기획부장은 "2004년 서울시에서 버스전용차로와 지하철·버스 연장운행을 한 이후 택시의 수익성이 심하게 나빠졌다"며 "택시 기사들의 근무 조건을 향상시켜서 구인난을 해소하려 해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008.12.8 조선일보

오현석 기자 socia@chosun.com
입력 : 2008.12.08 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