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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택시 눈치보기…동남아보다 못한 車공유서비스

석민수,연규욱 기자
석민수,연규욱 기자
입력 : 
2018-06-28 17:50:23
수정 : 
2018-06-29 1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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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제 기득권 이젠 허물자 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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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인근에서 한 시민이 택시를 타고 있다. 서울에서는 심야시간대 승차거부 등 민원이 집중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정부는 규제를 풀어 4차 산업혁명을 육성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정작 창업에 나선 벤처기업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규제 기득권의 '벽'에 좌절한다. 대표 사례가 '한국판 우버'로 불려 선풍적 인기를 끌다 택시업계와 서울시의 벽에 막힌 '풀러스'다. 전문가들은 택시 운전기사 일자리를 뺏지 않으면서 차량 공유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의지만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6년 5월 여객자동차 운수업사업법상 '카풀' 조항을 활용해 서비스를 시작한 풀러스는 택시보다 30% 안팎 싼 비용을 내세워 1년 만에 회원 80만명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네이버, SK 등이 포함된 220억원 대규모 투자도 유치해 앞날이 창창해 보였다. 풀러스는 고객 요구에 따라 작년 11월 기존 이용 시간이던 출근(오전 5~11시), 퇴근(오후 5시~오전 2시) 이용 제한을 없애고 고객이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출퇴근 시간선택제'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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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 택시업계가 강하게 반발했고 곧이어 서울시가 '철퇴'를 때렸다. 서울시는 풀러스가 '출퇴근 때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에만 자가용을 유상 운송용으로 알선할 수 있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 1항을 위반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며칠 뒤 "해당 서비스는 출퇴근 시간 유상 카풀이 가능한 현행 규정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라며 풀러스 편을 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이 문제를 맡으며 벤처기업들과 택시업계 간 대화로 풀어가려고 했지만 택시업계는 대화의 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7개월째 회의가 공전되는 동안 공격적 마케팅으로 적자가 늘었던 풀러스는 이달 직원 70%에 이르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풀러스의 좌절뿐만이 아니다. 이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흔히 보는 '우버'는 2013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2015년 선풍적 인기를 끈 심야버스 '콜버스'도 올해 4월 전세버스 예약 서비스로 업종을 바꿨다. 대기업들은 아예 국내에서 차량 공유를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됐다. 법과 규제 문제가 전혀 없는 단기 렌터카 시장에서 SK(쏘카), 롯데(그린카)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차량 공유 분야에서 전 세계는 뛰어가는데 한국만 점점 뒤처지고 있다. 지난해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차량 공유 서비스 보급률은 2016년 7%에서 2022년 13%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차량 공유 서비스는 낮은 가격, 접근성, 신뢰성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며 "다수의 경쟁 당국은 차량 공유 서비스가 소비자 후생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차가 보편화하면 차량 공유는 전 세계적인 '대세'가 될 전망이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업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글로벌 차량 공유 시장이 2035년에는 8000억달러, 2050년에는 7조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에서만 유독 공유경제의 대표 비즈니스인 차량 공유가 안 되는 이유에는 '표(票)퓰리즘'이 있다. 작년 7월 말 기준 서울시 택시면허 대수는 7만여대, 운전기사는 8만여 명이다. 전국적으로는 면허 대수가 25만여 대, 운전기사가 27만여 명에 달한다. 과거 '택시가 선거 여론을 이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의 표심이 막강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력한 이익집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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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반대만 하는 택시업계에 '규제 기득권이니 일방적으로 양보하라'고 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등록제가 아닌 면허제로 운용되는 택시업계는 요금을 통제받고 주기적인 차량검사 등 안전에 대한 다양한 의무도 지고 있다. 특히 택시 운전기사 대부분이 서민층이라 차량 공유업 활성화에 따른 실업 우려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택시면허권을 쥔 지자체와 관련 법을 좌우하는 정부·국회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어 풀리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차량 공유가 활성화하면 택시회사나 개인택시는 일정 부분 타격을 받을지 몰라도 일반 택시 운전기사는 신축적으로 일할 수 있고 소득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유럽에서는 택시 운전 경력자를 우선 채용하면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국 지자체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임서현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새로운 서비스에서 일어난 수익 일정 부분을 떼어내 기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해결할 수 있는 기금을 조성하거나 기존 택시·버스 운송사업자도 새로운 플랫폼 사업을 이용해 이용자를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석민수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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